2003년 1월 (창간호)

사회복지법인 인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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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전북 백일장대회 당선작>

나의 이야기

전정애 어머니

결혼이라는 단어에 꿈이라는 것은 꾸지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는 똑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 했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처음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시작을 하였다. 내가 뜻하는 대로 쉽게 이뤄진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었을까?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자리를 잡기도 어려웠지만 남편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 내가 집에서 놀기만 하면 안될 것 같았고 나의 노동력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에 주위에서 부업을 하면 어떻게 라도 해서 그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즈음에 남편의 청천벽력 같은 알콜중독 증세. 지방간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여 잠깐이기는 했어도 친정어머니를 못 알아보고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 하는 말은 정신병동으로 가야된다고 했을 때 알콜의 금단현상까지 보이는 남편의 겁먹은 표정 앞에서 나는 그랬었다. 내가 꼭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술만 절대로 먹지 말라고.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보름이 지났을 때, 서서히, 아니 그동안 먹지 못한 술까지 몸에 저장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나는. 또 우리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때가 큰애 24개월, 작은애 임신 6개월이었다.

알콜중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에게 찾아온 크나큰 시련이었다. 알콜로 인하여 제일 먼저 생긴 어려움이 남편의 직장생활이었다. 술 속에 살면서도 겨우겨우 일주일을 출근하면 2주일은 완전히 술에 의지한 채 집에만 누워있었다. 그런 생활을 몇 달하다가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의 소개로 수원으로 이사가 경기도청에 별정직으로 입사하였는데 집을 얻을 돈도 없어서 친구의 13평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우리는 살게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있어서 돌봐줘야 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런데, 남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모든 사람들한테 너그러울 수 있듯이, 나의 몸은 산달이 가까워오고 2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알콜중독으로 정신과 체력이 쇠해져 가는 남편을 보면서 친구의 어머니를 돌본다는 것은, 그때의 심정은 지옥과도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해 드릴만도 한데 그 어르신께는 너무나도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다. 살아 계시면 진심을 사과를 드리고 싶은 심정뿐이다. 경기도청에 입사하여 좀 긴장을 하고 일을 하면 꼼꼼하게 일 처리를 잘하여 직장에서 칭찬도 받고 하였지만 또 부딪친 문제가 성실성이었다. 역시나 일 주일 출근하면 이 주일은 병원에 입원하랴 술 속에 파묻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직장에 나가지 않는 사태에 또 이르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 친구의 집에서 나와 사글세를 살기 시작하면서 밤에 24시간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다가 몰래 먹기 시작하였다. 술을 끊게 해보려고 작정을 하고 남편이 나가면 나가는 대로 며칠을 쫒아 다녔다. 술을 사지 못하게 하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집에 놓고 밖으로 돌아다닌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사는 내 자신이 창피해서 주위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나. 결혼생활이라는 게 이다지도 힘들어야만 하는 건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죽지 못해 겨우겨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되었다.

그럴 즈음에 교회의 구역장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교회를 다니게 되었으며, 남편의 술을 끊게 하기 위하여 많지 않은 월급에서 십일조까지 내는 신앙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절박했기에. 전도사님이 기도하러 방문을 하면 주머니를 털어 콩나물 값도 남기지 않고 헌금을 할 정도의 믿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신앙인이 되어 1년을 생활하였다. 남편의 직장에서는 제대로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질타의 목소리가 나에게 한없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내버려두느냐고.

우리는 하루도 넘기지 않고 아이들 앞에서 싸우기만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항상 희생타는 5 살 박이 큰아이였다. 울면 맞고, 스트레스 받으면 괜히 또 때리고, 그래서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매일 싸울 것이 아니고 헤어져 살면 어떨까? 막상 그런 생각들은 아이들 때문에 맥없이 흩어져 버렸다. 학력은 고졸이고, 기술도 없고 직장생활은 결혼하기전의 3년이라는 경력밖에 없으며, 아이들은 너무 어려 누구한테 맡길 것인지 거기서 막혔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이렇게 살아야하는구나 푸념을 하다가 드디어 고아원에 들어가 살기로 작정을 하였다. 아이들에게, 이혼을 한다고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부모가 매일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아이들한테는 가정불화의 문제가 분명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헤어지는 쪽으로 굳혔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못살겠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돈도 없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기에 친정엄마한테 연락을 하였다. 헤어지고 나서 친정에는 절대로 기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래도 갈 데가 없었고 믿을 사람은 친정엄마밖에 없었다. 남편만을 경기도에 남겨놓은 채 갈아입을 옷만 가방에 넣어 하행선을 탔다. 별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혼 만 6년만의 일이었다. 친정에 오니 주위사람들은 많은 말들을 하였다 신랑 속 차리게 하려면 아이들을 놓고 나와야지 왜 데리고 왔느냐고. 그런 말들은 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나의 나이 29세로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삶이 돈 한푼 살림살이 하나 없이 우리 세 식구는 맨몸이었으며 막막하기만 하였다.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으며 돈만 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살림만 하다가 회사를 다닌다는 게 힘이 들었다. 매일같이 엄마만 기다리는 6 살, 29 개월 된 두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큰 아이는 저만 떼어놓고 엄마가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정서도 보였지만 어쩌랴. 그래도 나에겐 친정어머니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아줌마들의 돈벌이란 뻔한 것이어서 5시30분에 회사에서 끝나면 밤 12시까지 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하기 시작하였다. 퇴근하여 시골집으로 가면 새벽한시가 되었다.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보이니까 그때 작은아이가 5살이었는데 하는 말이 "우리 엄마는 아침에 집에 와요"라고 했을 때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섰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별거생활 했는데 아이들 양육비는커녕 옷가지 하나 사주지 않았으며 어차피 이렇게 살 바엔 이혼을 하고 정부의 도움을 좀 받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모자원이라는 곳은 어떤 사람이 살까하는 궁금증까지 생겼다. 쑥스러운 마음이 많아 이곳저곳 알아봐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더니 시청에 전화하여 문의한 결과 가정복지과 라는 곳으로 찾아가 보면 된단다. 그래서 그 다음날 시청으로 가서 상담을 하고 모자원을 친구와 같이 둘러보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이제는 친정에서 독립을 해야 되겠다 싶어 다시 시청을 찾아갔다. 모자원에 꼭 입소하겠노라고. 96년 2월 26일 입소날짜가 나왔고 이불 한 채와 옷가지만 가지고 이사를 하였다. 집이 참으로 컸다. 짐도 하나도 없으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이웃집아주머니가 국그릇, 밥그릇, 숟가락을 세 개씩 주셨다. 겨우 가스렌지만 연결시켜 놓고 나의 새로운 삶은 그때부터였다.

처음 모자원에 입소하려고 했을 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말렸다. 모자원에 들어가지 말라고, 아이들의 표정도 어둡고 왠지 좋지 않을 것 같다면서, 하지만 나는 갈곳도 없었지만 완강하게 거부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주위환경은 내가 만드는 것 아니냐고. 역시 그랬다. 나는 어떤 아파트, 좋은 집 부럽지 않았다 정말 행복했다. 아이들과 항상 같이 있어주지는 않아도.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나서며 학교 잘 갔다 오라고 하면 엄마! 나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가 아니라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고 인사를 해야돼? 라고 물어보았을 때도 죽어도 살아야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회사 설계사를 하고 있을 때 남편 아니 아이들 아빠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아이들 아빠이기에 왕래는 하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같이 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정말로 나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되는구나 싶었다. 여태까지 도움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99년 4월 실업극복군산운동분부에 입사하여 저소득 빈곤층의 상담을 맡았었다. 상담을 하면서 어려운 모자가정을 보면 모자원에 입소하라는 권유를 참으로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한마디씩 덧붙였다. 거기 들어가면 구속도 심하고 분위기도 안 좋다면서요?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저도 모자원에 사는데 모자원에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나요? 라고 말을 하면 이구동성으로 아니요? 라고 답을 하곤 하였다.

어찌되었든 모자원에 입소하여 보이게, 보이지 않게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자원 4년 자립원 2년 6개월... 여기에서 살지 않았으면 먹고사는 데도 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 지나온 기간동안 넓은 집이 부럽지 않았고 살림살이도 참 많이 늘었다. 가끔씩 게으름을 피려고 누워있다 보면 혜택을 받고 있을 때 열심히 일을 하여 전세라도 얻어서 나갈 기반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벌떡 일어서곤 한다. 어설프게 두서 없이 이렇게 펜을 굴려 오늘까지 왔지만 나는 과거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남편이 잘못을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같이하지 못하고 나 또한 잘한 일은 없다고 여겨지며 현재가 중요하기에 어제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살면 그게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또 우리아이들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것 같은 나의 스승 같고 중심이기에 열심히 키우며 살아갈 것이기에......

(편집자 주: 2002년 12월 30일 퇴소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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